류경식당 앞이다.
혼자 왔다 이야기 한다.
입구 문을 열어준다.
직원 두명이 옆으로 붙는다.
2층으로 안내를 한다.
자리에 앉는다.
나는 태어나 처음 경험해본 감정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십여 분을 입가에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껄껄대며 웃었다. 태어나 이렇게 웃어본적이 없다. 왜 웃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웃음이 나온다. 새로운 경험의 나날인 여행이었지만 처음 느낀 이 감정을 어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글은 그저 손가락 가는대로 써보려 한다.
류경식당 1층@super-traveler.com
이 상황이 너무 웃기다. 너무너무 웃기다. 정말 너무너무 웃기다. 반갑고, 슬프고, 가엾고, 원망스럽고, 그리웠고, 밉고, 사랑스럽고 정말 골까는 상황이다. 감정이 타들어 간다. 그동안의 내 정치관? 그걸 떠올려 뭐하나. 내가 문재인을 좋아하고 박근혜를 싫어한들, 전쟁론자를 비판하든 뭐든 아무 소용이 없는 기분이다. 그저 멍하다.
뭐가 그리 재밌냐 묻는다. 그냥 이 상황이 웃긴다고 이야기 했다. 나쁜 뜻은 아니니 오해는 말라 이어 말한다. 간신히 웃음을 참고 냉면을 주문하려는데 일 인분은 기계를 돌려야 해서 어렵단다. 이거 먹으려고 이곳까지 왔는데 무슨 말이냐 따져 물었다. 물론 문장 그대로가 아닌 미소를 띄며 장난으로 말이다. 아쉽지도 않다. 이 상황과 기분을 좀 더 즐기고 싶다. 마음으로 모두 담고 가야한다. 지금은 컵라면을 먹어도 즐거울것이다.
류경식당 1층@super-traveler.com
결국, 돌솥비빔밥에 평양 소주를 시킨다. 가진 돈으로 이것밖에 사 먹지 못한다. 풍족했다면 낯선 북한 음식을 맛봤을 것이다. 밑반찬이 세팅되고 소주를 따르려는데 옆에 와선 직접 따라 주신다. 한잔은 받고 앞으로 스스로 따라 마시겠다고 웃으며 말씀드렸다. 손님도 없고 그녀들은 좀처럼 내 곁을 떠날 생각을 안 하고 대기 중이다. 대화가 이어진다.
나처럼 젊은 층도 종종 오냐 여쭤보니 거의 안 온단다. 태국에서 하노이로 왔고 여행 중이라 하니 태국은 덥진 않았는지, 여행은 어땠는지 묻는다. 그들은 세련됐고, 근사한 말투를 구사하고 있었다. 이게 소위 말해 훈련인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려 한다.
평양소주는 21도@super-traveler.com
외국에서는 나이를 묻는 게 실례지만 과감하게 물어보는 건 남한이든 북한이든 코리안들은 다 똑같나 보다. 질문에 서른다섯이라 말을 하니 결혼 여부를 묻는다. 미혼이라 말하니 왜 장가를 가지 않았냐 보채는듯한 말투로 말을 한다. 통일되면 저한테 시집오실래요? 라고 말을 하니 예상치 못한 공격이라 느꼈는지 이번에는 본인들이 웃음을 참지 못한다.
“(북한말투로)어찌 그리 말씀을 잘하십니까?”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반전은 있다@super-traveler.com
돌솥비빔밥이 나온다. 흩어지는 안남미가 아닌 익숙한 쌀로 지은 밥의 식감이 너무 반갑다. 냉면이 아니면 어쩌랴.. 그렇게 평양 소주를 마시며 수위를 조금씩 높이며 대화를 이어간다. 주로 여행, 날씨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단, 정치 이야기는 당연히 쏙 빼고 말이다. 특히 나를 향해 오래간만에 온 젊은 손님이라는 이야기가 자꾸 떠올라 대화의 톤도 캐주얼하고 쉽게 나누었다. 사교성 하나는 자신 있는 나였고, 풍부한 화술을 구사하는 그녀들이라 끊김은 없었다.
나는 이 기분을 모르겠다. 솔직히 통일에 대한 기대는 언젠가는 되겠지..라며 관조적으로 생각했다. 적어도 내 세대에서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생각을 했다. 경제협력을 하되 서로 간의 틈을 좁히는 데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초등학교 때 배운 그 순수했던 일차원적인 통일교육이 다시 떠오른다. 적어도 내가 어릴 때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유행가처럼 부르고 다녔었다.
북한도, 한국도, 미국도, 소련도, 일본도 싸잡아 원망이 든다면 대책 없는 비판론자 취급을 받을까? 이 뿌리는 어디서 거슬러 올라야 할지 모르겠다. 조선왕조가 국력이 있었다면? 김일성이 유학을 하지 않았다면? 김구 선생께서 암살당하지 않으셨다면? 그만 생각하자. 울적한 기분만 밀려온다. 몇백 킬로미터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수천 킬로 떨어진 이곳에서 마주하고 있다. 그저 냉면이 떠올랐고, 그렇다면 평양냉면은 어떨까? 란 생각으로 온 내가 이런 생각을 안고 이곳에서 식사를 할 줄 몰랐다.
돌솥비빔밥@super-traveler.com
곧 단체 손님이 테이블을 차지한다. 한국의 모기업 직원들이었다. 처음 나를 경계하더니 직원에게 여행자라 이야기를 듣고는 내게 인사를 건네오신다. 나 또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익숙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직원들과 안부를 나누는 등 매우 친해 보였다. 한국사회에서는 빨갱이니 뭐니 세대와 이념 갈등이 심각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선 식사하는 사람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 뿐이다. 핵무기 개발을 위한 외화벌이에 일조? 잘 모르겠다. 파리만 날리고 있는 류경식당을 보고 있으면 말이다.
직원들은 단체 손님을 맞이하기에 정신이 없다. 그러면서 나를 챙기는 건 잊지 않는다. 고마웠다. 나는 내내 아쉬워 평양소주를 한병 더 시키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 돈이 없다. 그 남은 소주도 천천히, 몇 번을 꺽어 마셨나 모른다. 술도 취하지 않고 조금 더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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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 직전이라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한 직원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더니 귓말로 음식은 더 시키지 않아도 좋으니 잠시 후 시작되는 공연을 감상하란다.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나. 나는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본 북한 여성들의 공연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그 광경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내심 가엾기도 하고.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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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있기 죄송해서 그냥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나 또한 아쉬워 사진 촬영을 요청드리니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을 한다. 냉면 먹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못먹었으니 찍어 주셔야 한다고 장난스레 말씀드렸다. 몇 번의 응석 끝에 지켜야 할 사항을 확인하고서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느낌상 일반인이 아닌 고위직이나 VIP의 방문 기념사진을 찍는 위치인듯 하다. 그렇게 김경희란 이름의 시그네춰가 있는 공작새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김경희가 김일성의 딸 김경희인지는 모르겠다.
어렵게 얻어낸 사진으로 얼굴 공개를 하지 못하는점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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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앞까지 배웅을 나온다. 다른 건 몰라도 서비스 하나만큼은 고급호텔 못지않다. 살펴 가란 말에 건강히들 지내시라는 내 이야기는 자동으로 튀어나온 말이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든, 하노이에서 근무하든, 혹여나 탈북을 하든 부디 건강히 지내셨으면 좋겠다.
오는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금방이다. 아트리움 호텔 직원들은 저녁마다 투숙객들과 맥주 파티를 한다. 함께할만 했지만 그저 오늘은 혼자 있고 싶다. 감정을 무얼로 설명해야 할지, 수많은 인파가 오고가는 하노이의 여행자 거리에서 홀로 야외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기분? 엿같다..
이 신발을 신고 태국을 그리 걸어도 한번 다친적이 없었는데, 이날 얼마나 고생을 하며 찾아갔는지 알 수 있는 영광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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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근처로 돌아와 혼술을 시작한다. 이날 좀 많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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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시점.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해외에 있는 북한 식당의 종업원들이 탈북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한국, 미국의 정권이 교체되었고 북한은 허구한날 미사일 실험을 한다. 적어도 2년전보다 더 악화 됐으면 됐지 덜하진 않는다. 북한의 무력시위에 분노를 하면서도 빨갱이 타령을 하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부 사람들도 원망스럽다.
그래서인지 2년전 하노이 류경식당에서의 추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내 정치관의 큰 틀이 바뀌진 않았지만 통일이란 단어를 대하는 자세는 이전보다 더 진지해졌다. 외국에 있는 북한 식당을 방문한 단편적인 인연 치곤 큰 변화다. 우리서로 뜻이 달라 총칼을 겨누고 있어도, 옛 독일처럼 최소한의 민간교류는 이어지길 기대해보지만 참 어려운 문제다.
이상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남남북녀의 팩트체크로 기억한다 말하길 좋아했던 소중한 에피소드를 마무리 한다. 여행하며 별일 다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빠이를 달리고, 코사멧에서 일광욕을 하던 내가 지금은 북한식당에 방문해 잃어버린 민족애(?)를 떠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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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슈퍼트래블러
-류경식당(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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