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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Thailand/태국에서 120일

태국에서 120일 #132-쉐라와 함께 도이창. 그리고 나의 여행.

by 슈퍼트래블러 2019.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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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도 한번 가보지 않은 치앙라이의 도이창을 나는 몇번을 가본건가. 서울 출신인 나도 63빌딩을 아직 가보질 않았으니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다. 전날 함께 축구경기를 본 친구 쉐라에게 도이창 사진을 보여주니 안내해달라고 한다. 처음 보는 쉐라의 여동생 '애플'도 동행하길로 했다. 앞서 말했듯 도이창은 가도가도 지겹지 않은 곳으로 오토바이는 숙소에 놔두고 쉐라의 차로 도이창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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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인의 축구사랑은 남다르다. 특히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를 좋아해 자국 리그의 이름을 한때 프리미어 리그라 칭하기도 했다. 오늘은 쉐라의 초대로 메파루앙 공항 근처의 싱하 스테디움을 찾았다. 빅경기인지..

www.super-traveler.com

여행을 하며 몇몇 현지 친구들과 쌓은 추억이 있다. 그러나 쉐라는 코드가 통해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스튜어디스란 직업 특성상 마인드는 태국에 한정되지 않았다. 나또한 내 스스로를 한국으로 묶어 사고하고 느끼는걸 썩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다. 사소한 이야기로 시작해 어떤 주제에 있어선 토론도 하고, 이때쯤 내 속마음은 한국으로 영입(?)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친구이기를 떠나 매우 훌륭한 인재란 생각이 들었다.

 

쉐라와 함께 시간을 보낼때는 난 기회라 생각해 태국, 태국인에 대해 서슴없이 질문을 하곤 했다. 그 질문에는 현재 레즈비언으로서 사랑의 철학 부터 태국의 왕실까지, 주제의 한계는 없었다. 글을 쓰는 현재 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유의 절반은 쉐라, 그리고 쉐라의 가족과 지내면서 배운것이 절반이다. 앞으로 나는 쉐라가 없는 쉐라의 시골집에서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과 지내게 된다. 

 

앞서 소개했지만 나는 정치권에서 일을 해왔다. 지겹고 잊고 싶은 정치권에서의 경험이지만 일할때의 습관은 남아있다. 어떤 이슈에 대해 대화 나누기를 좋아한다. 꼭 답을 듣지 않아도 된다. 이 자체에 의미를 둔다. 그러기에 쉐라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물론 이 우정을 시기 질투하던 '나나' 그리고 쉐라의 연인 '꽝'과 결국에는 트러블이 생기고 만다.

 

이따금 쉐라가 레즈비언이 아니었으면 꼬셨을거냐?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제발 이러지 말자. 모두가 당신같은게 아니다. 경험담에서 의거한 질문이라 생각하니 애써 비난을 받고 싶다면 그리 하길.

한평생 수염 기를일이 없다 생각했고, 왜? 그들은 여행을 하며 수염을 기르는지, 깍을 시간이 없었다는건 믿기 어렵고. 그런데 내가 이러고 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는데 수염을 깍는 행위 자체에 귀찮음을 느꼈다. 큰 의미가 없다. 오래 여행을 하니 외모를 가꾸고, 신경쓰는 일에 의미를 두지 않기 시작했다. 같은 옷을 빨아 입고, 수염이 자라도 신경 안쓰고, 머리카락에 바르던 왁스는 버린지 오래다.  

 

고양이의 태국어가 '매오'다. 머리를 쓰다듬으니 갸릉갸릉 소리를 낸다. 뒤로 잠깐 보이는 쉐라의 여동생 '애플'과 셋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첫번째 주제는 '내 여행의 끝은 어디인가'였다. 쉐라와 여동생은 그냥 치앙라이에 눌러 살기를 원하는듯 제스쳐를 취한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사실 이시점에서 라차밧 대학교의 입학과정을 알아본것도 사실이다.

 

치앙라이가 내게 너무나 잘맞는 도시라 치앙라이-서울을 오가는 일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기 위해서 어학연수부터 시작하는건 어떤지 생각을 해보았다. 후에 기여코 라차밧 대학교를 방문해 입학과정이 소개된 자료를 얻기에 이르른다. 어쨌든 이렇게 떠도는게 이따금 외롭기도 하지만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의 가사처럼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를 느끼며 귀향하는 것도 내 인생에서 나름의 의미는 있을거라 생각했다.

 

해는 저물고.

나는 도통 이 여행의 시작과 끝을 모르겠다. 분명한 시작은 있었다. 일에서 느낀 배신, 그리고 이별. 나의 실수 등. 그러나 치앙라이 어느 언저리에 버리고 왔는지 이제는 그 상처로 비져진 과거를 떠올리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다만 두려운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잊은 과거가 거미줄처럼 날 묶을지도 모를거란 공포. 

 

쉐라. 그리고 가족들의 따뜻한 환대를 앞두고 있지만 결국 그것이 독이 되어 몇주 후 나는 치앙라이를 떠난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태국 북부의 모든 도시를 여행한다. 소중한 그들에게는 무릎을 꿇고서라도 감사를 표하고 싶지만 이런 안락함과 따뜻함에 젖어 들다간 스스로 더 무너지진 않을까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행동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하지만 이럴려고 다 버리고 태국으로 온게 아니었다. 나는 좀 더 고생을 해야 한다. mor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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