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도로를 따라 환상적인 드라이브 도로로 유명한 태국의 1091국도. 파야오(Phayao)와 난(Nan)을 잇는 도로다. 직접 운전을 하니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난까지 가는 동안 내 시선을 경치에만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 계산을 제대로 하질 못했다. 해가 지고 몇십 킬로미터를 달려도 가로등 하나 나오지 않는 이 도로에서 나는 낭만 보다 공포를 느끼고 말았다. 그야말로 원초의 자연을 마주한 기분마저 들었다.
시작은 좋았다. 치앙라이에서 출발해 지루한 1번 고속도로를 벗어나 동쪽으로 향했다. 인터넷이 끊겨 구글맵에 딜레이가 걸려 몇번 길을 잃기도 했지만, 1091 국도를 찾는건 그리 어렵진 않았다. 물론 중간에 검문이 있기도 했다. 난(Nan)으로 간다고 하니 다들 내게 엄지척!
음악을 들으며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엔진에 부담스러운 소리가 들릴쯤 부드러운 능선이 나오며 도이창과 푸치파에서 보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미 태국 북부에 익숙한 나는 이런 풍경에 감동을 넘어 곰곰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어떻게든 기록에 남겨 이런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께 안내를 하고 싶다는 생각. 그 기록병이 지금 이 블로그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태국에는 이런 숨은 명소들이 너무나도 많다. 괜히 관광대국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산능선을 따라 끝을 알 수 없는 도로를 한참을 달리니 결국 오토바이에 무리가 왔다. 시동이 꺼진 것이다.
사실 오토바이 운전은 꽤 자신이 있었지만 하드웨어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내 맨붕은 이때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내 오토바이였다면 어떻게라도 했을텐데 장기렌트한 오토바이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몇주전 오토바이에서 넘어져도 내가 다친것 보다 오토바이 상태를 먼저 걱정했다. 돈없이 여행을 하기에 수리비가 걱정된 것이다. 그런데 역으로 내가 오토바이를 뜯어보면 뭐하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존멋의 열을 식히고 뜨거운 아스팔트에 한시간을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한시간 동안 단 한명의 사람도 지나가질 않았다. 점점 초조해진건 겨우 닿는 인터넷으로 본 구글맵에 의하면 아직 내가 갈길은 너무나도 먼 것이다. 더군다나 시골에서 오토바이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해가 지면 얼마나 무서운지, 이를테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 길이 어떤 식으로 되어있는지도 모르고, 날벌래는 온몸으로 향한다. 또한 길가에 짐승이 튀어나와 사고를 겪을뻔한 기억도 있고, 어쨌든 나는 되도록 야간에는 시골길을 달리지 않으려 했지만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대로 야영을 하고 잠을 청해야 할지 고민끝에 다시 존멋의 시동을 걸어본다.
부르르르르릉! 시동이 걸린다. 혼자 얼마나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었는지 모른다. 이때부터 눈에 뵈는게 없었다. 사실 제대로 된 표현으로 "쪽팔렸다" 한시간 동안 주저앉아 했던 생각들은 기록에 남기고 싶지도 않다. 묘한 보상심리가 올라와 50km로 달리다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해는 지고 어느덧 컴컴해졌다.
잠시 쉬어 담배를 입에 물다가 엔진 소리가 거슬려 시동을 끄면 도로위에는 오직 어둠과 희미하게 보이는 달빛 그리고 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겁이 나다가도 생각의 프로세스를 바꿔보기로 실험해본다. 그저 해가 졌을 뿐이다. 그저 빛이 사라졌을 뿐이다. 세상은 달라진게 없다. 그저 캄캄해졌을 뿐, 이곳은 그대로다. 겁먹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둠에 대한 공포를 그렇게 극복해갔다. 혹여나 어떤 사고가 생겨도 내 팔자란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해진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심각한 상태로 나를 몰고가는 것으로 오해도 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혼자 몇달을 여행해봐라. 사람은 이렇게 변한다. 오직 내 자신과 대화를 나눌뿐이다. 나는 이걸 기회로 삼았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다. 어쩌면 여행을 떠날때, 돌아올 준비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생각이 유연해짐을 느껴 쾌감마저 느껴졌다.
그나저나 난은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것일까?! 이 길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